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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 속에서 예배합니다.

예수님 자체인 떡은 일시적으로 육체적 배고픔을 채울 수 있는 그저 만나 같은 생산물이 아니다. 그것은 삶을 단지 지속시키는 것이라기보다는 삶을 치유하고, 변화시키고, 완성하는 음식이다. 물리적 떡이 생리학적 생명을 가능하게 한다면, ‘생명의 떡’은 사귐의 삶에 영감을 주고 능력을 부여한다.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이 양육하시는 삶은 단지 끝이 없는 삶(영생)이 아니다. 특히 삶이 결함이 있거나 붕괴된 상태로 그저 계속된다면 말이다.

요한은 먹는 것이 거함과 관련이 있다고 곧바로 알려준다. “내 삶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요6:56). 먹는 것은 단지 외부에서 온 것을 소비하는 일이 아니다. 성찬 식사는 예수님과 함께 거하는 법을 배워, 예수님이 하셨던 방식으로 타자들과 함께 거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다시 말해, 성찬 식사는 우리 삶의 관계들을 바꾸어 그 관계들이 자기 내어줌의 성격을 띠게 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삶 자체의 실천을 변화시킨다. 생물학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에 생리학적 식사가 계속되기는 하지만, 삶을 가능하게 만드는 관계들이 변화되기 때문에 삶의 모습과 촉감이 바뀐다.

생명의 떡을 먹는 다는 것은, 그 떡을 흡수한 다음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그 떡에 의해 변화되는 것이다. 토머스 머튼은 그것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산 떡은 우리가 받아들일 때 우리를 그것 자체로 변화시키지, 평범한 음식으로 우리 몸에 흡수되지 않는다. 사실 떡 조각은 우리 안에서 분해되지만, 로고스의 실체는 우리 영혼의 자양분이 되어 우리가 더 이상 우리 자신의 삶이 아니라 그분의 삶을 살 수 있게 한다.”

따라서 예수님을 먹는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생명이 내 생명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우리는 성찬 식탁에 갈 때 예수님을 없애기보다는 ‘그분을 기억하고’ 그럼으로써 그분의 삶이 지속되고 있음을 증언한다. 이 식사의 결과로 우리 생명이 그분과 함께하고 그분 안에서 지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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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무지와 실명의 안개


전주

오르간 No.1, 35 Miniatures-Flor Peeters

예배로부름

🔼 오늘의기도

🔼 여는찬송

다같이 왕이신 나의 하나님 (3번 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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